세 단계의 공부 과정질문 타 사찰에서 참선을 하다가 우연히 대행 스님의 법문을 접하면서 관하는 도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요, 대행 스님의 세 단계의 공부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증명관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답변 지금 시쳇말로 공부하는 과정을 시로 한마디 읊겠습니다.내가 죽은 이름 없는 이름이여나와 남이 두루 같이 죽은이름 없는 이름이여나와 남이 같이 두루 나투는이름 없는 이름이여해산봉은 화산 터져 두루불이 진동하여 이름 없는 이름이그대로 여여하더라이것은 누가 가르쳐 줘서 하는 말도 아니요, 누가 지어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서두에 쪼금 얘길 하고선 하렵니다. 처음에 이 얘길 듣지 않고는 지금 설법하려고 하는 말의 뜻을 납득할 수가 없으니까요. 선법이라는 것은 내가 쫓아다니면서 설법하는 게 아닙니다. 선 강의라는 것도 없고, 여러분의 마음과 내 마음이 동시에 같이 합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과 더불어 진실한 마음이라야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겁니다.주인공이다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주인공’ 이랬다고 해서 없는 것이 주인공이 아니고 고정된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행도 없고, 고정된 들음도 없고 봄도 없고, 먹는 것도 고정된 게 없고 모
어떻게 관하는 것인지요질문 유튜브에서 큰스님 영상 법문을 보고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근데 일체를 관하라 하시는데 어떤 일체를 어떻게 관해야 하는 것인지요. 답변 일체라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와서 지금 찰나찰나 화해 가면서 돌아가고 있으니 일체지요. 자기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주가 있듯이 말입니다. 모든 것은 일체 같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둘이 아닌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체, 일체’ 하죠. 그러니 지금 ‘일체 모두 놓고 관하라’ 이러는 것입니다. 내가 나더러 해 달라고 하는 것
(지난 호에 이어서)잘 들으세요. 세 가지 여건이 있습니다. 말 보시, 말 보시도 무주상 보시입니다. 내가 여러분처럼 학식을 많이 쌓아서 그걸 봐 가지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뽑아 가지고선 여러분에게 해 드리면 쉬워요. 그러나 여러분한테는 마음이 있습니다. 요만한 마음이 전체의 우주를 덮고 받치고 굴리면서, 여러분한테 극진히 내 마음을, 내 몸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말씀해 드리는 이건 무주상 보시가 아닙니까? 또 물질 보시가 있습니다, 물질 보시! 여러분한테 이렇게 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참, 말은 안 합니다마는 없으면 없는 대로 물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 한자리에, 항상 한자리를 하면서도 또 한자리를 한 것 같습니다. 우주의 섭리와 더불어 우리 생활이 같이 돌아가면서도 너 나가 있듯이, 너 나가 있으면서도 한자리 하고, 한자리를 하면서도 한자리가 아니고 한자리가 아니면서도 한자리를 할 수 있는 깊은 뜻, 그 깊은 뜻에 의해서 우리는 움죽거리고 있는 것입니다.항상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리는 것은 말로 그냥 떨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 법이 돼서 여러분한테 이익이 가고 여러분 생활에 지침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문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책을 보고 어떠한 이
(지난 호에 이어서)욕심이 생겼다는 얘깁니다. 욕심이 생겼는데 내가 항상 말을 하듯이 여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自信)이 있다면 그것을 밀고 나가고 자신이 없다면 밀고 나가지 말아야 하겠죠. 이것이 자기 분수에 따라서 판단하고 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판단을 할 때 처음에는 요기밖엔 못 디뎠는데 나중에는 저기까지 딛게 됐다 이겁니다, 지혜가 넓어져서. 그랬을 때 차츰차츰 뛰어야 되는 거지 이걸 한꺼번에 뛰려면 안 되니까 살면서 체험을,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체험을 해 나가시라 이겁니다. 그러다 보면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지금 젊은 분들도 그렇거니와 애들서부터 어른까지 다 알아야 할 인생관, 인생이 어떻게 해서 자기한테 주어졌고 어떻게 조화가 돼서 돌아가는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화원의 꽃이 저렇게 한데 합쳐져서 조화가 이루어졌듯이, 또는 산의 고목이나 벌레 먹은 나무들, 짧고 긴 나무들, 풀 등도 각기 모습이 다 다른 것들이 같이 모여 있기에 조화를 이룬다는 것, 산골마다 물도 좋고 돌도 있고, 그 여러 모습들이 조화된 아름다움으로 우리들 눈에 비추어진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대한 것도 역시 그와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질문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어렴풋이 이해는 가지만 확실히 몸과 마음이 각각 있는데 어찌 둘이 아니라 하시는 것인지요. 답변 우리가 항상 몸을 보시면 아신다고 그랬죠. 몸을 보실 때 공체죠. 간단히 말해서 공체로 우리가 살죠. 그런데 딴 사람도 공체란 말입니다. 딴 사람도 공체고 나도 공체고 전부 여기 있는 분들 다 공쳅니다. 공체고 공생이고 공심이고 공용을 하시고 사시고 또 공식으로서 우리가 들이고 내고 하는 것도 공식으로서 그냥 들이고 내고 삽니다. 그러니까 “모두 전체가 공해
(지난 호에 이어서)질문자3(남) 저는 스님 법문에서 주인공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러면 그 주인공은 제 몸속에 있는 것인지, 또 우주의 허공 법계에 꽉 찬 것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과 주인공은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그러면은 염불이나 기도는 꼭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주인공에게 맡길 경우가 된다면 그렇게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여쭤 보는 것입니다.큰스님 뭐, 문은 여기도 많죠. 염불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서 가는 문이 있고, 선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여러 가지의 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는 한층 더 분발해서 자유스럽게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 만물이 다 내 스승 아님이 없다 함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물에 가면 싱그럽고 물이 좋죠? 그러니 물은 말없이 날더러 물같이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꽃을 볼 때에 꽃도 나같이 살라고 하는 겁니다. 모진 풀뿌리를 봤을 때도 나를 보고서 지혜롭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체 만물은 다 나같이 살라 하니 내 스승 아님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모로 봐서 지극하게 믿고, 믿는 것을 바깥으로
살아서 마음 도리 알아야 한다는데질문 스님께서는 살아서 이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이 마음 도리를 모르고 몸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지요.답변 항상 여러분한테 생활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교재라고 했습니다. ‘불(佛)’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하고 ‘교(敎)’라는 것은 생활, 삶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이유가 어딨느냐. 사람이 살면서 내 주인공의 줄을…, 이건 근본이기 때문에 움죽거리진 않습니다.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의 줄을 잡고 그 언덕을 넘어서야 된다는 얘기죠. 즉 말하자면, 천야만야한 산을
(지난 호에 이어서)우리가 이런 공부를 많이 한다면 세계 평화가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전부 바깥에서, 지금도 거기 싸우는 나라 어딥니까. 거기 대통령이 말하는 데도 “우리는 알라신이 이기게 한다.” 그러고는 “저렇게 악인들은 다 떨어진다.” 즉, 죽는다 이거죠. 조그마한 쿠웨이트가 기름으로 인해서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삼분의 일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그것도 적다고 그냥 뺏어 버린 거 아닙니까? 그렇게 욕심이 많은데 어떻게 부처님인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게 ‘페만’이 아니라 ‘패망’이죠. 마음 한생각에
새해가 오자마자 이라크페만 사건이 벌어지고, 뭐, 예견했던 바이지마는 그렇게 속성과로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몰랐다면 말이 안 되지마는 아무튼 사람들이 많이 놀랐을 겁니다. 예전에도 여러분한테 얘기한 적이 있죠.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 완성을 해야만이 외부의 모든 것들을 다 한마음으로 할 수 있는데, 한마음은 빛보다 더 빠르다고요. 빠르게 오고 가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시대는 보는 것도 컴퓨터나 미사일이나 또는 인공위성을 띄워서 두루 하면서 보는 그 견해가 얼마나 많이 발전이 됐는지, 그 먼 거리를 눈앞에 보고 있는 시대
참다운 인생의 길은 간다는 것은질문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하는데 그럼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해야 참다운 인생의 길을 가게 되는지요. 답변 여러분은 그렇게 겪어 보지 않았고 또 실감 나지 않는 일이 돼서 모르시겠지마는 이런 걸 얘기로 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실감 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증명이 되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물속에도 그 돌에 있는 그 느끼, 또는 흙의 느끼 그런 것만 걷어 먹고 남하고 싸움하기 싫고, 또 연쇄적으로 잡아먹어 가면서
질문자1(남) 스님,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번 날 냉수를 제가 한 컵 마셨더니만 상당히 시원했습니다. 근데 그 기분에 온 세상이 다 시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에 ‘그 한생각이면 모든 것이 다 같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큰스님 본래 우리가 공생, 공심으로서 공용을 하고 돌아가고 있지요. 그건 대의적인 문제고요. 내가 한생각을 내서 옆의 사람도 못 보던 거를 알게 됐다, 또 내가 물 한 모금 마시면 내가 시원하니까 딴 사람도 다 시원할 거다 하는 것도 내가
올 새해에는 여러분께서 한마음의 도리에 더욱 정진하셔서 가정에 병고 액난이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자면 좋은 일도 있고 언짢은 일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인간뿐이 아니라 만물의 살림살이가 다 그러합니다. 우리 가정만 그런 게 아니라 날아다니는 새도 그렇고, 기어 다니는 벌레도 그렇고, 우리 인간도 역시 그렇고, 고통이라는 것은 언제나 뒤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도 슬픔도 괴로움도 아닌 그 가운데서 내 마음을 발현해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게 돼야겠죠. 하여튼 제가, 아
여여하게 살고 싶어요질문 저는 생각이 많고 분별심이 많아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여여하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열심히 참선도 해 보고 경전 독송도 해 보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참 부끄럽습니다. 저 같은 이들에게 채찍이 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그래서 사대 성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똥 누러 갈 때도 ‘내가 눠야 될까, 안 눠야 될까’ 하고 가느냐? 똥 마려우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럴까 저럴까’ 하는 생각도 없이 그냥 화장실로 가
십 년, 이십 년, 근 삼십 년을 두고 여러분을 접해 왔으나 여러분을 가만히 볼 때마다 참, 내 몸과 같이 아프고, 그 아픈 말은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의학적으로도 발전이 되지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해서 나을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도리가 있었고, 그 후에도 그런 도리가 많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의학적으로 발전이 돼서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지수화풍으로써 형성돼서 미생물이 생겨서 그 모든 미생물로 하여금, 그 생명으로 하여금 수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나투어서
여러분이 자성 삼보에 귀의한다고 하시죠? 그 이름만 들어도 자성 삼보라는 그 뜻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나의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과, 움죽거리지 않는다 하면은 또 이상스럽게 듣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수레가 돌아가도 중심이 끼워진 주 중심 봉은 움죽거리지 않습니다. 힘만 배려해 줄 수밖에 없는 거죠. 힘만 배려해 준다 이겁니다. 움죽거리지는 않는다. 수레가 돌아갈 뿐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의 근본도 부동자세한 그 뜻으로서의 힘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을 배출하는 반면에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서
모든 일이 자기 탓?질문 모든 일이 다 자기 탓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생에 지은 인연에 의해서 닥치는 것인지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답변 우리는 요렇게 짤막짤막하게 한 토막씩 찰나찰나 넘어가니깐 그렇지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바로 일생, 칠십 평생 팔십 평생 넘어가는 이 때에 우리는 그 물에서 떴다가 그 물에 가라앉을 뿐입니다. 가라앉았다 뜨고 떴다가 가라앉고 이렇게 하는 것밖에는, 인생이 그런 거밖에는 안 됩니다. 떴다 가라앉고 떴다 가라앉고 하는 그런 동안에 우리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