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의 끝 12월이다. 시간의 빠름과 세월의 흐름이 바람 같다고나 할까? 아님 구름 같다고나 할까? 올 한 해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글로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진정한 주인 이었을까?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내가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수처작주 입처개진”,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라는 뜻이다.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
牧牛家風(목우가풍), “말과 행동을 절제하며 소처럼 묵묵하게 정진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가 말(言)과 행동(行)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 속에 복이 들었는지 독이 들었는지, 선인지 악인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그 언어에 뒤이은 행동 역시 충분한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언어의 혼란스러움과 그 언어를 따라 나오는 행동들, 혼란스럽기만 한 현실 속에서 ‘절제’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묵묵이 정진하는 것. 말을 정제(精製)할 수 있고 우리들의 행동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해를 되
봄이 얼마 전인가 싶었는데 여름 가을이 지나고 어느새 또 겨울이다. 시간의 흐름. 세월의 흐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시간을 흐르고 세월은 쌓여간다. 그 시간과 세월 속에서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청년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그렇다. 만물은 항상 변하며 영원히 실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나 명예에 집착하고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자신을
가을,새로운 계절이 시작됐다 싶더니 어느새 또 다른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도래하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삶’이라는 명제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오늘의 대중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기 위해 점점 더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처럼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가는 일은 힘겨운 삶에서 크나큰 축복이자 공부라고 생각한다.힘겨운 오늘 ‘무위(無爲)’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기에 훤히 드러나고, 자랑하지 않으니 자기 공로가 있게 되고, 스스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가을의 향기. 참 반갑고 고맙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풍성함이 가득한 계절이 왔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산천초목도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고 가을 풍경을 드러내겠지. 뭔가 모르게 자유로움이 내 곁에 안기는 듯 참 좋은 계절이다.불교는 스스로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락을 추구하는 종교이고,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고 즐거움을 베푸는 종교이다.자유롭고 풍요롭고 안락하고 행복하고 즐거움이 있는 그 속에 괴로움도 있겠고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이 좋은 계절 가을, 잠시라도 굴레의 얽매임에서
더위가 한풀 꺾인듯하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오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의 정겨움을 곳곳에서 느낀다. 새로운 계절을 앞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지나가 시간, 다가 올 시간 사이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다시 숨 가쁘게 달려가야 할 시간을 위해 잠시 ‘나’를 점검한다.나를 사랑하고 보듬어 보는 시간이다. 이런 저런 일로 번잡하고 괴로울 때 조용히 앉아 나 자신을 잊어보는 것이다. 비워보는 시간, 잊어보는 시간, 교만했
우리는 과연 성불할 수 있을까요? 성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작불(作佛), 성도(成道), 득도(得道)라고도 하며 깨달아서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 등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루신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고통이 없는 편안한 정신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나와 진리가 일치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즉, 육체와 정신을 일치시키고 나와 진리가 일치되는 원래의 성품을 찾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누구나 부처님처럼 고통 없는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의
장마가 한풀 꺾이더니 이제는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태풍이란 놈이 또 비와 바람을 몰고 온다고 하니 고난의 연속입니다만 모든 불자님들의 마음에 석가모니부처님의 환한 미소가 자리했으면 좋겠습니다.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불기(不器)’입니다. 쓰임새가 그릇과 같이 하나의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정한 그릇이나 기물의 용도는 정해져 있지만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여러분은 어떤가요? 불기(不器)인가요? 모든 것에 다 통하고 있
장마에다 높은 습도와 온도 그리고 정치, 사회, 문화 등 어느 부분에 속 시원한 것이 없이 답답한 요즘. 초발심이란 단어로 여러분의 마음과 내 마음 하나 되어 부처님 뜻 이루는 시간되기를 기대하며 붓을 잡아 봅니다.‘초발심’의 사전적 의미는 “불도를 구하는 마음을 처음으로 일으킴”이라는 말로 신발의(新發意-보리심을 처음 일으킴) 또는 금도심(今道心-전에는 속인이었지만 지금은 불도를 믿는 마음)이란 단어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요.초발심, 발심 없이 수행이 있을 수 없고 수행이 따르지 않으면 발심은 헛된 망상이라고들 합니다. 스스
현재가 영원할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죠.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잘 풀릴 때가 그럴 때일 것 같습니다. 또 반대로 현재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겠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괴롭고 힘겨울 때가 그럴 때일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떠올리는 문장이 있습니다. 시역과의(是亦過矣), 이 또한 지나가리라.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둠에 갇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뇌면 그 짐이 가벼워질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상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모든 것이 지나가겠지요.한 해의 절반이 지
1년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나름의 계획과 목표들로 시작한 2023년인데 어느새 절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벌써’가 아니라 ‘아직’ 6개월이 남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각자가 가진 시간의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하여튼 2023년도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불자님들의 계획들은 하나씩 하나씩 열매 맺을 준비들을 하고 있는지요? 저는 올해 ‘一切有心’이란 글로 시작하여 많은 감동을 넘어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다양함을 피부로 느끼며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요즘 저는 저의 사무실 창 너
저는 요즘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까지 어머님이 계신 곳에 머물며 어머님과 이곳저곳 나들이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구순의 어머니, 체력도 약해지시고 움직임도 예전보다 부족하시고, 또 ‘치매’ 증상도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머이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랑’이란 말에 웃으시며 저에게 “우리 아들, 나도 사랑한다이”라고 하십니다.‘사랑’, 그냥 듣기만 하여도 마음이 즐거워지고 환해지는 말입니다. 우리 불교에는 이 있지요. 이 경전에서는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커서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5월의 산사 그리고 도심의 거리는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연등으로 환하게 빛난다.감사하고 또 감사함으로 빛나는 5월. 그 가슴 벅찬 5월에 새겨보는 경구가 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다. 즉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시불(卽心是佛). 에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는 경구가 있다. 곧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며 진심이 아니면 부처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럼 ‘부처’라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맑고 푸른 5월,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 주변의 모습, 모두가 부처의 모습 아닐까?그래서 “성불하세요”라는 인
맑고 푸른 5월의 하늘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태동 그리고 푸르름, 꽃들의 합창, 이 모두가 희망이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까?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며 밝히는 수많은 등들 그리고 탑들 속에 피어나는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그 크신 자비광명. 감사하여 내 마음속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나도 부처와 같은 성품을 볼 수 있을까?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중생의 성품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성품이라고 한다. 어떤 책을 보니 “마음을 닦아라”고 한다. 그리고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번뇌망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우리의 지혜가
많이 듣고 많이 읽어보고 많이 느껴본 무소유.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느끼는 무소유는 어떤 것일까? 스님의 무소유와 우리들의 무소유,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의 깊이를, 그리고 나와 무소유의 개념,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무소유라는 의미는 어떤 의미일까? 부처님의 삶과 사상을 닮아가는 것? 너무나 깊고 크고 넓고 광대하여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어떤 이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참 어렵고도 힘든 일 아닌가. 우리, 이 세상 올 때 빈손으로 왔다가 이
어떤 분들이 나한테 이런 말들을 한다. 어떤 글을 보고 참 멋있게 잘 썼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왜 글을 그렇게 썼냐고들 한다. 다들 각자의 보는 견해에 따라 이렇다 저렇다 말들을 할 수 있겠다. 각자의 생각과 보는 관점에 따라 그렇게들 평가하는 모양이다.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그때 그 작가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의 예술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 세상일들도 그런 것 같다. 서로가 보는 관점에 따라 또 취미에 따라 취향에 따라 서로가 보는 모습들이 다름을 느낀다. 표현 역시 말이다.관해난수(觀海難水),
우리들의 꽃자리는 어떤 자리일까?모두가 바라고 앉고 싶은 그 자리 꽃자리.구상 시인의 시 중 한 소절입니다.“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가시방석처럼 여기는 자리내가 지은 감옥속에 갇혀있고내가 만든 쇠사슬에 메여있고또 그가 만든 동아줄에 엮어있다.저 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그제사 세상이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그것이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세상 살아가는 우리네들 모두가 환경과 조건이 엉망이라는 이들이 참 많다. 그리고 고통, 시련이 나를 피하지 않고 그냥 나에게 다가온단다. 이 일을 어찌할까. 사람들 중
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위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서로를 먼저 생각해준다면 결국 모두가 이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결국 모두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자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가피’가 있습니다. 모두 부처님의 가피 받고 싶어 절에 가지요. 부처님 가피 받아 바라는 일 다 이루어지길 바라며 부처님 전에 기도 올리죠. ‘
오늘은 ‘염불(念佛)’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念(생각할 염), 佛(부처 불),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일, 사전적 풀이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약사여래불 등등. 중요한 사실은 염불을 한다는 그 자체가 공덕 속에 포함되어 있고 또 염불을 하면 호흡이 평상시보다 10배 정도 더 길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염불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심호흡이 되고 맥박이 평상시보다 느려지게 되므로 마음이 안정되고 장수하게 된다고 합니다.염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방법들이 있겠지요. 그
필자는 몇 년 전 교회에 열심을 다하는 안수집사였습니다. 어떤 이유로 교회와의 인연을 끊고 난 후 어느 날 묘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나는 꿈속에서 어떤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머리가 곱슬곱슬한 어떤 사람과 동자승이 손을 잡고 서 있었습니다. 곱슬머리의 그 사람 뒤로는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광채가 보였는데,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눈물을 닦아 주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고 필자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평범한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