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혼돈한 시기에도 붓다를 향한 간절한 마음은 더욱 불타올라 문화의 꽃을 피워냈다. 지난 연재에 이어 중국 역사상 다섯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혼돈했던 오대시기에 그려진 〈화엄경칠처구회도〉(그림①)를 소개하고자 한다.이 〈화엄경칠처구회도〉는 둔황 장경동에서 발견된 대형 견본화 중 하나로 현재 프랑스 국립아시아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 그림에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불상의 자태는 풍만장엄하다. 필선은 세밀하고 유연하며 색채가 아름답고 구도도 치밀하고 엄정하다. 각 섹션의 상단과 두 면에는 아름다운 비천이 그려져 있는데 옷자
이전 연재에서 밝혔듯이 과거 한·중·일 3국의 불교는 그 어느 종파보다도 아미타사상에 입각한 정토신앙이 널리 퍼지고 흥성하게 되면서 이에 따라 〈정토변상도〉가 많이 그려졌다. 중국 미술사상 수·당 이후 대략 7세기 전후해 미적 감각에서부터 예술 양식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북위시대 전기의 암울 침잠했던 흐름이 홀연히 밝고 선명한 모습으로 일신한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붓다 ‘본생도’에서 살펴봤듯이 숭고, 비원(悲願)의 아름다움이 북위시대 흐름이었다면 당대에 이르러 현실의 즐거움으로 바뀌면서 우리와 친숙한 보살, 비천
지난 연재에서 돈황 제220굴 〈서방정토변상도〉의 면면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서방정토는 어디에 있으며 과연 어떤 곳일까? 경전에 따르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十萬億佛土)를 지나 극락정토가 있으며, 이곳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주재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과 서방정토에 대한 대승경전이 편찬된 시기는 기원을 전후한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유스(Amityus)’와 ‘아미타바(Amitbha)’로, 번역하면, ‘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 ‘무량한 광명을 지닌 자’이다. 대중부 계통에서 여
우리는 ‘상락아정(常樂我淨)’ 즉, 항상 즐겁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것이 이생에서 이뤄지지 못하면 저 생에서라도 이루기 위해 귀의삼보하고 있다. 저 생에서 상락아정을 이루는 곳이 바로 서방정토(西方淨土)다. 경전에서 설한 서방정토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바로 〈서방정토변상도〉이다. 〈서방정토변상도〉를 통해서 붓다 이래 묻 중생들이 갈망해온 서방정토가 어떤 곳이며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지난 연재에 이어서 〈서방정토변상도〉의 형식과 예술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돈황 막고굴의 〈서방정토변〉은 수량이 가장 많은 경변도 중 하나이다. 이 〈서방정토변〉은 남북조시대 등장했고, 당(唐)대에 접어들면 많은 양의 경변도가 그려진다. 돈황 막고굴에 현존하는 〈서방정토변〉의 종류는 약 34종 1200폭이 전한다. 〈서방정토변〉의 출현시기부터 완성시기까지는 약 150년에 걸쳐 그려졌다. 돈황 막고굴의 〈서방정토변〉은 4세기 중엽부터 단독상과 설법도의 예가 현존한다. 초기에는 병령사의 제169굴 〈무량수불설법도(無量壽佛說法圖, 424년)〉에서 벽화로 출현했으며, 막고굴 제285굴(538年)이 대표적이다. 또
지난 연재 ‘유마힐변상도’를 통해서 돈황의 벽화가 성당 시기에 이르러 점차 중국전통 회화 표현 방법인 선묘화(線描畵) 위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변화의 현상은 당말, 오대, 북송에 이르면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번 연재에서는 그 변화를 역력히 읽을 수 있는 당(唐)말의 작품인 ‘약사정토변상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에서 설한 “부처님과 보살이 큰 원인이므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나니, 왜냐하면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맞추어 약을 주는 까닭이다”는 법구와 같이, ‘선지식’은 중생이 처한 심신의
유마힐(維摩詰) 거사는 불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가불자이다. 그 이름은 고대 인도어를 음역한 것으로 ‘정결(淨潔)’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즉, 그는 몸과 마음이 연꽃처럼 깨끗한 재가불자로 이는 불교도들이 추구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경전에 의거하면 유마힐 거사는 원래 묘희불국(妙喜佛國) 세계의 보살로 중생구제를 위해 거사이자 부유한 상인의 두 가지 신분으로 인간 세상에 왔다. 거사는 지식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신통이 무변해 마치 마술사처럼 다양한 방편과 환상을 통해 중생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시키고 가르쳤다. 그래서
중국 역사상 당대(唐代)는 중국의 문화 예술이 가장 융성했던 최고 절정기였다. 그래서 이를 ‘찬란한 대당세계(大唐世界)’라고 일컫기도 한다. 당대 변상도는 이런 시대성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돈황 벽화 중에 규모가 가장 큰 제148굴 ‘약사경변상도’를 살펴보면서 당시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한다.막고굴의 제148굴의 동벽 북측에 있는 ‘약사경변상도’는 당 현장(旣唆)의 신역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을 기반으로 그려졌으며, 돈황 벽화 중 최고로 큰 폭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 폭으로 구분돼 연결되는 3련식(聯式) 구성인데,
대승불교가 사상적으로 성숙해가고 있던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의 사이에 수많은 대승경전이 나타났다. 이러한 불교경전의 출현은 새로운 신앙운동에 발맞춰 형식화된 전통불교를 붓다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불교혁신 운동으로 전대의 상좌부불교(소승불교)의 모순을 극복했다. 특히 공(空)사상에 입각한 새로운 불교해석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기본 교리로서 중생제도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대중을 지향하는 불교임을 표방하였다. 이 대승불교가 석가모니의 존재를 초역사화·초인격화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과 다른 ‘여래(如來)’, ‘붓다’로
앞에서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즉, 북주(557~ 581)시대 열반도와 수(581~618)대의 열반도의 면면을 통해서 서역미술 양식이 중국전통 회화양식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우리가 과거의 불상이나 불화를 감상하는 것은 예술 조형의 미감뿐만 아니라 그 조형을 통해서 그것과 당시 사회사상의 흐름을 명확히 하고 아울러 문화발전의 맥락을 살피는데 도움을 얻는 것이다.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철학은 지식을 재료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의 정감을 재료로 나타나게 된다”라고 말했다.이로
붓다는 진리를 찾아 왕자의 자리도 버리고 출가하여 오랜 고행 끝에 지혜의 눈을 뜨시고 그후 4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면서 자비를 구현하셨다. 그러면서 80세에 으르셨는데 어느 날 쿠시나가라(Kusinagara)에 도착하시어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해 눕고 싶다. 저기 사라수 아래 가사를 네 겹으로 깔아다오. 나는 오늘 밤 여기서 열반(涅槃)에 들겠다.”- 83p이렇게 말씀하시고 머리를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하며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전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팔리어로 기록된 ‘팔리어본’과 산스크리트 문헌 혹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채집된 이야기를 모아서 한역한 ‘한역본’으로 나눌 수 있다. ‘팔리어본’은 초기의 불교 상황,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의 수난사, 각 민족의 기원 설화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한역본’은 팔리어본 보다 다소 늦은 시기에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달되는 과정 중에 그 지역의 험난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한역된 본생담 〈현우경(賢愚經)〉 〈육도집경(六度集經)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변상도(變相圖)’라 하면 비단에 채색으로 그린 불화나 혹은 경전 속에 삽입된 목판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와 다르게 바늘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刺繡) 변상도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8세기 돈황 벽화 〈영축산 석가모니설법도〉로 100여 년 전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그림①)이 자수작품은 색채가 풍부하고 솜씨가 뛰어나 돈황 장경동에서 출토된 가장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자수 작품을 말하자면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장(勸修寺舊藏)의 자수 〈석가모니설법도〉(일본불교미
지난 회에는 붓다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즉, 전생을 그림으로 표현한 ‘녹왕본생도’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붓다가 이 세상에 오신 후를 소재로 하는 불화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이와 같은 붓다의 생애를 소재로 하는 불교미술은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 경전은 붓다의 전생 즉, 본생담과 출생한 이후의 전 생애를 서술하고 있다.이처럼 붓다의 생애를 묘사한 ‘불전도(佛傳圖)’는 우리나라에서는 ‘팔상도(八相圖)’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사찰의 팔상전(八相殿, 捌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
붓다의 수많은 전생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녹왕본생(鹿王本生)은 사슴왕이던 붓다가 자비(慈悲) 베풀어 선근(善根)을 심었다는 이야기이다. 본생설화는 대게 서(序)·본(本)·후(後) 삼분(三分)으로 구성되어있다. 붓다와 같은 성인은 전생에 수많은 선행의 삶을 통한 윤회로 비로소 성불한다는 것이다. 서분(序分)은 불타가 본생설화를 설(說)하시게 된 경위와 장소 등을 말한 것이고, 본분은 본론으로서 전생에 있어서의 불타의 경력을 말한 것이다. 후분은 본분 중에 나타난 주인공이 바로 불타 자신의 전신(前身)이라는 것과 그 외 누구는 현재 누
불교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기에는 먼저 붓다의 생애에 관련된 작품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이미 앞에서 인도 초기 불사리탑 기단에 붓다의 사적(事蹟)이 조각되어 있음을 말했으며, 중국 돈황석굴에도 붓다의 생애를 표현한 회화작품이 많은데, 이런 것들이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초기 벽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소승교(小乘敎)의 〈현우경〉과 〈불설수행본기경〉 등에 근거하여 그린 본생고사(本生故事)와 인연고사(因緣故事), 그리고 불전고사(佛傳故事)이다.본생고사는 붓다 전생의 갖가지 선행에 대한 이야기로, 녹왕본생(鹿王本生)·
1세기 중반 그리스의 신상을 모방하여 최초로 붓다의 형상을 조각하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가 된 인도 서북부 간다라(Gandhara) 지방에서의 일이다. 오늘날은 파키스탄에 속하며 여기서 성행한 인도·그리스 혼합 양식의 불교미술(Art grecobouddhique)을 간다라 양식이라 한다. 그 특징은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에서 같이 옷 주름의 융기선을 입체적으로 처리하는 등 사실적인 표현에 있다.(그림①) 이에 자극을 받아 갠지스강 중심의 인도 중부지방서는 순수한 인도양식의 불상 조각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마투라(Mathura
종교와 예술은 서로 간에 그 어떤 내재적 연결 고리가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인류의 의식이 오늘날과 같이 각 영역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던 총체적 성격의 시대 및 사회에서는 종교와 예술 등의 이념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혼용의 상태였다. 종교의 기능은 인간 본질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예술 역시 인간 본질을 살펴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함이니 같은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종교와 예술의 결합은 바로 종교 내부의 1차적인 성스러움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종교 외부의 표현 매체를 통해서 표출해내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