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부두르대탑(Borobuduru Stupa)이 ‘화엄경탑’임을 들어내기 위해 앞글에서 보로부두르대탑의 10층 구조와 〈화엄경〉 ‘십지품’을 배대했다. 또한 대탑 4개 회랑의 부조상 배치와 52수행계위를 담고 있는 〈화엄경〉 ‘입법계품’간의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서로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보로부두르대탑 4방과 8~10층에 조성된 불상의 상징성을 파악하여 대탑이 화엄경탑임을 밝히고자 한다.현재 보로부두르대탑 관리국은 대탑 부처상들의 명호를 크롬(Krom)의 주장인 “금강계만다라에 의한 불상의 배치”에 의존해 대탑의
보로부두르대탑의 4회랑은 대탑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회랑이다. 4회랑의 부조상의 내용은 3회랑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판단하면 대탑 1·2·3회랑과 유기적으로 연관선상에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계위적 입장에서 4회랑에는 입법계품의 마지막 선지식인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보리도에 이르는 법을 설하는 장면들과 선재가 마침내 법계와 불계에 이른 장면들이 나와야 한다. 이 계위는 52계위의 마지막 묘각의 자리로 불지에 이르러 보현보살과 부처님과 함께하는 자리이다.그러나 4회랑의 주벽 부조상 72면은 보현보살과 선재동자가
보로부두르대탑(Borobuduru Stupa)이 ‘화엄경탑’임을 드러내는 3가지 방법 중에서 앞서 보로부두르대탑의 10층 구조와 〈화엄경〉 ‘십지품’의 각 지를 배대해 서로 상응함을 살펴봤고, 지난 연재에서는 대탑과 〈화엄경〉 ‘입법계품’과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대탑의 4개 회랑 중 1회랑과 2회랑의 부조상 배치와 52수행 계위(階位)를 비교했다. 이번 글에서는 3회랑과 4회랑의 부조상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앞에서 살펴본 대로 2회랑에는 53선지식이 등장해 수행계위 52계위인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
보로부두르대탑(Borobuduru Stupa)이 ‘화엄경탑’임을 들어내는 방법 3가지 중, 지난 연재에서는 보로부두르대탑의 10층 구조와 〈화엄경〉 ‘십지품’을 배대해 서로 상응함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대탑의 4개 회랑의 부조상 배치와 52수행계위(階位)를 담고 있는 〈화엄경〉 ‘입법계품’간의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대탑이 ‘화엄경탑’임을 밝히고자 한다.‘입법계품’은 〈화엄경〉의 마지막 품으로서 39품 중 한 품이지만 그 분량은 권수(60~80)로 볼 때 총 〈화엄경〉 분량 중 약 1/4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또한〈화엄경〉 앞의
보로부두르대탑이 화엄탑임을 확인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보로부두르대탑 건립(775~835년)시 인도네시아에서 유통되었던 산스크리트 본 〈화엄경〉의 수행 구조와 대탑의 10층 구조를 배대하고, 대탑 불상의 배치를 〈화엄경〉의 불타관 우주관에 근거해 세밀히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탑의 4개 회랑의 부조상 배치와 〈화엄경〉의 수행 계위(階位)의 상관관계를 살핀다면 보로부두르대탑과 〈화엄경〉의 상관관계를 조명할 수 있다. 이번에는 보로부두르대탑의 10층 구조와 〈화엄경〉 수행구조를 비교분석해 일치함을 들어내어
인도네시아에 〈화엄경〉이 유통됐다는 문헌적 단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보로부두르대탑이 발견된 후 선구적 학자인 크롬과 그의 제자 보쉬의 노력으로 보로부두르대탑의 2회랑, 3회랑, 4회랑의 부조상 대부분이 ‘입법계품’의 내용을 소재로 조성됐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크롬은 대탑의 전체적 구조를 밀교금강계 만다라로 규정하고 그의 이러한 주장은 불교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 대탑의 ‘입법계품’ 부조상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화엄경〉 유통과 화엄 사상과는 관계없이 일시적이고 우연히 조성된 단지 대탑의 장엄의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불탑을 보로부두르대탑(이하 대탑과 혼용 사용)이라 칭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대탑은 방대하고 다양한 소재를 정교하게 표현하는 예술성, 지정학적인 역사성, 간다라와 안드라 불교미술의 영향을 받은 불교 건축학적 특성, 석가 세존의 이야기와 본생담을 모티브로 제작한 부조상의 종교 미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대승 경전의 불교 사상을 극적으로 조형화한 경전탑으로서 세계 종교 건축물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탑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 역사적 기록과 구법승들의 언급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