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미디어, <월간 불광> 4월호 발간

불광미디어가 발행하는 불교 대중문화 잡지 <월간 불광> 4월호(통권 594호)가 발간됐다. 이번 호 주제는 ‘광개토왕과 불교’다. 우리나라 최대 정복군주로 알려진 광개토왕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 ‘영락태왕(永樂太王)’과 ‘호태성왕(好太聖王)’이다. 영락(永樂)은 ‘영원한 즐거움’을 뜻하는 불교적 의미를 지니며, 성왕(聖王)은 전륜성왕을 뜻한다.

광개토왕은 소수림왕 시대 고구려의 불교 공인 이후,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통치체제를 마련하고자 했다. 즉위 시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며, 평양에 9개의 사찰을 세워 고구려의 평양 천도를 준비했다. 또 왕이 정복한 요동 지역에 ‘아육왕탑’을 세웠다. 아육왕은 인도의 아쇼카왕으로 전륜성왕을 대표한다.

실제 고려시대 일연 스님은 ‘요동성 육왕탑 (遼東城 育王塔)’의 글을 마무리 지으며 이 같이 칭송했다.

실제 아육왕의 보탑(寶塔)은 속세 곳곳에 세워져
비에 젖고 구름에 묻히고 이끼마저 아롱졌다
생각건대, 그때 길을 지나던 눈 중에
몇 사람이나 이 신성한 무덤을 가리켰을까

고려(고구려를 일컫는다)의 성왕이 요동성을 순시하다 신이한 체험을 하고, 그곳에 7층 목탑을 세웠다 하는 데, 일연 스님은 그 성왕이 주몽은 아니라고 했다. 현재 연구자는 이 성왕을 광개토왕으로 추정한다.

즉, 광개토왕은 고구려의 전륜성왕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는 교시를 내려,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이 모든 일이 왕이 즉위하고 3~4년 내 이뤄진 일로 추정된다. 광개토왕이 통치이념으로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살펴봤다.

광개토왕의 능비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고구려 역사를 알려주는 능비의 역사적 가치, 특히 능비의 쟁점인 ‘신묘년(辛卯年)’ 관련 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살폈다. 능비에 기록된 신묘년 글은 백제와 일본,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 해석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해석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글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불교신앙’이다. 고구려 불교는 문헌 기록이 많지 않아, 연꽃과 예불도 등 고분벽화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는 고구려 불교를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일반적으로 사신도, 수렵과 무용 등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죽은 이의 연화화생(蓮花化生)을 염원하는 불교적 요소다. 불교적 의미를 지닌 고분벽화는 고구려에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그려진 것이기에, 고구려의 초기 불교를 알려주는 또 다른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반도 역사상 불세출의 정복군주로만 알려진 광개토왕. 전륜성왕을 닮고자 했던 광개토왕의 면면을 이번 <월간 불광>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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